마음도 나 가 아니요 생각도 나가 아니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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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그래요?
법문 듣지 말고
선어록이나 경전을 보세요
달마 혈맥론
문자로 마음을 정의하지 않는다면 과연 마음이란 무엇입니까?
그대가 묻고 있는 바로 그것이 그대의 마음이요.
내가 대답하는 이것이 바로 나의 마음이다.
만일 내게 마음이 없다면 어떻게 대답할 수 있겠는가 묻고 있는 그것이 바로 그대의 마음이다.
시작도 없는 영겁의 세월을 통해서 그대가 무엇을 행하든지 그대가 어디에 있든지 그것이 바로 그대의 진짜 마음이다.
그것이 그대의 진짜 부처다.
이 마음이 바로 부처다.
이 마음을 벗어나서 그대는 다른 어떤 부처도 찾을 수 없다. 마음을 벗어나서 깨달음이나 열반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때의 마음이란 인과 관계에 얽매이지 않는 그대 자신의 순수한 본성을 가리킨다. 그대의 마음이 바로 열반이다.
돈오입도요문론
문) 그 마음은 어떤 물건과 같습니까?
담) 그 마음은 푸른 것도 아니며 누런 것도 아니며, 붉은 것도 아니며 흰 것도 아니며, 긴 것도 아니며 짧은 것도 아니며,
가는 것도 아니며 오는 것도 아니며, 더러운 것도 아니며 꺠끗한 것도 아니며, 나는 것도 아니며 없어지는 것도 아니어서,
담연하고 항상 고요한[湛然常寂] 이것이 본래 마음의 형상이며 또 본래 몸이니, 본래의 몸이란 곧 부처님의 몸이니라.
마조록
대매산(大梅山) 법상(法常:752-839)스님이 처음 참례하고 스님에게 물었다.
"무엇이 부처입니까?"
"바로 마음이 부처다(卽心卽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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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지마니까야,전재성 역주
특징이 없고,
한계가 없고,
모든 경우에 빛나는
의식이 있네.
앙굿따라니까야, 빛나는 마음의 경(A1.49)
수행승들이여, 이 마음은 빛나는 것이다.
그 마음이 다가오는 번뇌로 오염된다.
배우지 못한 일반 사람은 그것을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알지 못한다.
그래서 배우지 못한 일반 사람에게는 마음의 수행이 없다고 나는 말한다.
수행승들이여, 이 마음은 빛나는 것이다.
그 마음이 다가오는 번뇌에서 벗어난다.
잘 배운 고귀한 제자는 그것을 있는 그대로 안다.
그래서 잘 배운 고귀한 제자에게 마음의 수행이 있다고 말한다.
쌍윳따니까야 12:20 조건의 경[ paccayasutta)
수행승들이여, 무명을 조건으로 형성이 생겨나는 것과 같이
수행승들이여, 여기서 여실한 것, 허망하지 않은 것, 다른 것이 아닌 것,
이것(여실한 것)을 조건으로 하는 것,
수행승들이여, 이것을 연기라고 부른다.
여실한 것,허망하지 않은 것=마음=실체있음
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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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나라는 용어는 사용하면 안됩니다
나면 나지 진짜나,가짜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능엄경
문수야! 내가 지금 너에게 묻는다.
네가 지금 문수인데 다시 이 문수에게
시문수(진짜문수 是文殊, 眞文殊)라 불러야 할 것이 있겠느냐,
시문수(진짜문수)라 할 것이 없겠느냐?"
문수가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어!
제가 진실한 문수이므로 따로 진짜문수(是文殊)라 할 것이 없겠습니다.
왜냐하면 만약 시문수가 있게 되면 곧 두 가지 문수가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저는 금일에 문수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 시비(是非)의 두 모습이 '없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보는 성품의 묘명(見妙明)과 가지가지 허공과 티끌 또한 그와 같아서
본래가 그대로 묘명(妙明)한 무상보리(無上菩提)의 깨끗하고 원만한 진심(眞心)이거늘
이것이 허망하게 색공과 견문이 되는 것이
마치 눈을 눌러 제이월(第二月)을 보는 것과 같다.
이 가운데 무엇을 시월(진짜달,是月)이라 하겠느냐?
문수야! 다만 하나의 진실한 달(一眞月)이 있을 뿐,
그 가운데 어디에도 '시월(진짜달 是月)이다 비월(가짜달 非月)이다' 할 것은 없다.
그러므로 네가 지금까지 보는 견(見)과 물상(塵)을 통해 가지가지로 드러내 보였지만
이것이 다 잘못된 생각(妄想)이기에
그러므로 그 가운데 시(진짜 是)와 비시(가짜 是非)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보통사람(범부)들은
나는 사람(오온)이다하고
사람이 보고 듣고 느끼고 알고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나는 사람(오온)이라는 생각은 버려야할 잘못된 견해(오하분결)입니다
쌍윳다니까야 팍구나
[팍구나]"세존이시여,누가 존재합니까?"
[세존]"그와 같은 질문은 적당하지 않다.
나는 '사람이 존재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만약 내가 '사람이 존재 한다'라고 말했다면
'세존이시여,누가 존재합니까'라는 물음은 옳은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렇게 말하지 않은 나에게는 오로지
'세존이시여,무엇때문에 존재가 생겨납니까?'라고 물어야 한다.
그것이 올바른 질문이다.
그것에 대한 올바른 대답은 이와 같다.
취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생겨나고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생겨난다.
[팍구나]"세존이시여,누가 태어납니까?"
[세존]"그와 같은 질문은 적당하지 않다.
나는 '사람이 태어난다'고 말하지 않았다
만약 내가 '사람이 태어난다'라고 말했다면
'세존이시여,누가 태어납니까'라는 물음은 옳은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렇게 말하지 않은 나에게는 오로지
'세존이시여,무엇때문에 태어남이 생겨납니까?'라고 물어야 한다.
그것이 올바른 질문이다.
그것에 대한 올바른 대답은 이와 같다.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생겨나고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고 죽음이 생겨난다.
이와 같이 해서 모든 괴로움의 다발들이 함께 생겨난다.
사람이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괴로움(번뇌망상)이 생겨나는 것
괴로움의 소멸=해탈, 열반
맛지마니까야 근본 오십품 유명소경(전재성 역)
[위사카]
붓다께서 말씀하신 ‘몸이 있다는 有身'은 무엇입니까?
[담마디나]
몸이 있다는 유신(有身)은 오온(육신과 정신)입니다
[위사카]
어떤 방식으로 유신견이 일어납니까?
[담마디나]
오온(육신과 정신)을 잘못 이해하고,
오온(육신과 정신)을 실재라고 믿으며,
자아(아트만,영혼), 나, 라고
그릇되게 파악할 때 유신견(有身見)이 일어납니다.
통찰을 성취하신 그 분들은
유신견, 의심, 계금취를 모두 소멸하고
네 가지 악처를 벗어나며
여섯 가지 큰 죄를 다시는 범하지 않습니다.
유신견= 물질과 형태로서 존재할려는 욕망,존재에 대한 집착,번뇌
계금취(戒禁取)=그릇된 계행(戒行),믿음,관습을 올바른 것이라고 집착하는 것
의심= 올바른 법(사성제,팔정도)을 의심하는 것
쌍윳따1:21 칼 경
3. 칼의 품 Sattivagga
[세존]
"칼날이 몸에 와 닿는 것처럼,
머리카락에 불이 붙은 것처럼,
개체가 있다는 견해(유신견)를 버리기 위해
수행승은 새김을 확립하고 유행해야하리"
숫타니파타 4장 14. 서두름의 경
존귀하신 분은 말씀하셨다.
"지혜를 가진 사람은 '나는 있다'라는,
'망상'이라고 간주되는 것의 뿌리를 완전히 잘라야 한다.
무엇이든 갈애가 내 안에 있다면,
항상 마음을 집중하여 그것들을 몰아내도록 자신을 수련해야 한다.
유신견에서 벗어나는 것이 불교수행의 첫걸음
여기서 육신과 정신(오온)이 내가 아니고 나의 자아가 아니고 나의 마음이 아니라면
지금 보고 듣고 느끼고 알고하는 이물건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일어납니다
이 의문에 대한 학인의 질문에 답한 스승의 대답을 참구하는 것이
간화선입니다
스승의 대답을 공안이라하고
공안을 참구하여 시절에 몰록 깨치면 화두공안을 타파했다(대오했다,견성했다)하는 것
선종(선불교)의 공안집에는 벽암록과 종용록이 있음
운문록
무엇이 학인 자신입니까?
작살 하나로 한 번 찌른다
조주록
무엇이 학인의 자기(自己)입니까?
뜰 앞의 잣나무를 보아라.
병정동자 래구화(丙丁童子 來求火)
보은현칙 화상에게
법안선사가 물었다.
일찍이 어떤 사람을 보고 왔는가?
청봉화상을 뵙고 왔습니다.
어떤 말씀을 하시던가?
저가 일찍이 묻기를, ‘무엇이 학인의 자기 자신입니까?’라고 하였더니
청봉 화상이 이르기를 ‘병정(丙丁)동자가 불(火)을 구한다.’라고 하였습니다.
법안 선사가 말하였다.
상좌는 어떻게 이해하는가?
병정(丙丁)은 불에 속하니 불을 가지고 불을 구하는 것은
자기를 가지고 자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법안 선사가 말하였다.
그것은 생각으로 아는 것이다. 그대는 불법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만약 그렇게만 알고 나에게 오지 않았다면 오늘 어지러운 번민이 일어났을 것이다.
보은 화상이 되돌아가다가 문득 생각하였다.
저분은 5백 명을 거느린 선지식이다.
나를 옳지 않다고 하였으니 반드시 훌륭한 점이 있을 것이다.
라고 하고는 다시 돌아와서 참회하고 곧 물었다.
무엇이 학인의 자기 자신입니까?
법안 선사가 말하였다.
병정동자가 와서 불을 구하는구나.
보은현칙화상이 그 말을 듣고는 곧 활연히 크게 깨달았다.
벽암록
제 1칙 달마불식(達摩不識)
양무제가 말했다.
“나와 마주한 그대는 누구십니까?”(帝曰,對朕者誰.)
달마대사가 대답했다.
“모르겠습니다.” (磨云,不識.)
무제가 이를 깨닫지 못했다.(帝不契)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불교 ..참나 는 어디에..?
완릉록
하루는 홍주자사(洪州刺史) 배휴가
용흥사(龍興寺)에 왔다가
벽에 그려져 있는 그림을 보고는
안내하는 스님에게 물었다.
“저것이 무엇이요?”하니
성현의 모습입니다 하였다.
스님의 말을 듣고 다시 물었다.
“모습은 볼 만하다마는,
성현은 지금 어디에 있소?”
안내하는 스님이
질문에 얼른 답을 못하고
우물쭈물하자 배휴가 다시 물었다.
“이 절에는 선사가 없소?”
“근래에 한 스님이 와 계시는데
선사같이 보입니다.”
그러자 배휴는
그 스님을 불러오라고 했다.
황벽선사였다.
배휴는 앞에서와 똑같이 물었다.
“성현은 지금 어디에 있소?”
이때 황벽은 큰 목소리로 불렀다.
“배휴!”
배휴는 깜짝 놀라 엉겁결에
“예” 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선사는
틈도 주지 않고 되물었다.
“지금 어느 곳에 있소?”
이 말에
배휴는 깨달음을 얻어서
선사에게 귀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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