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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위자(존재)-중론

by 보명거사 2018. 5. 18.


행위=업(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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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굿따라니까야,조건의 경 

11. [세존]
"미혹하여
탐욕에서 생겨나고
분노에서 생겨나고
어리석음에서 생겨난
크고 작은 행위를 저지르면,
세상에 그 과보를 받아야지
다른 가능성은 없으니.

수행승이라면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을 분명히 알아
명지를 일으켜서
모든 나쁜 곳을 끊어 버려야 하리."




행위자=존재=업을 조건으로 생겨나는 것=연기소생=의타기성= 실체없음=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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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윳따니까야-인연-자양분의 품-조건

8. 수행승들이여,
존재는 덧없는 것이고 만들어진 것이고 조건지어진 것이고
쇠망하는 현상이며 사라지는 현상이며 소멸하는 현상으로 연생이다.



 

쌍윳따니까야-너것이 아님 경


1 한 때 세존께서 싸밧티 시에 계셨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이 몸은 그대들의 것이 아니다. 또한 다른 사람의 것도 아니다.

수행승들이여, 그것은 이전의 행위(業)로 만들어진 것이며, 생각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감수(느낌,니밋따,환영)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2. 수행승들이여, 그레서 고귀한 제자는 연기의 법칙을 듣고 철저하게 사유한다.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으며, 이것이 생겨나면 저것이 생겨난다.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으며, 이것이 소멸하면 저것이 소멸한다.




능엄경
妄相發生 非本來有
 
그러나 다 허망한 생각으로 생긴 것이지
본래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제5쌍윳따 쎌라

[쎌라]

이 환영은내가 만든 것이 아니며 

원인을 연유로 생겨났다가

원인이 멸하면 사라져버리네.

마치 어떤 씨앗이 밭에 뿌려져

흙의 자양분을 연유로 하고

그 두 가지로 성장하듯이.

이와 같이 존재의 다발(오온)

인식의 세계 ( ) 

또는 이들 감각영역들은(處)


원인이 소멸하면 사라져버리네.







행위자는 없고 행위만 있다는 이야기는 어디에 나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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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윳따니까야 나형외도경

[깟싸빠] "존자 고따마여, 괴로움은 스스로가 만든 것입니까?"
[세존] "깟싸빠여, 그렇지 않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깟싸빠] "그렇다면 존자 고따마여, 괴로움은 남이 만든 것입니까?"
[세존] "깟싸빠여, 그렇지 않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깟싸빠] "그렇다면 존자 고따마여, 괴로움은 스스로 만들기도 하고 남이 만들기도 하는 것입니까?"
[세존] "깟싸빠여, 그렇지 않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깟싸빠] "그렇다면 존자 고따마여, 괴로움은 스스로 만든 것도 아니고 남이 만든 것도 아닌 원인 없이 생겨난 것입니까?"
[세존] "깟싸빠여, 그렇지 않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깟싸빠] "그렇다면 존자 고따마여, 괴로움은 없는 것입니까?"
[세존] "깟싸빠여, 괴로움은 없는 것이 아니다. 깟싸빠여, 괴로움은 있는 것이다."

 
[깟싸빠] "그렇다면 세존 고따마께서는 괴로움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까?"
[세존] "깟싸빠여, 나는 괴로움을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니고 보지 못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깟싸빠여, 나는 참으로 괴로움을 안다. 깟싸빠여, 나는 참으로 괴로움을 본다."

 [깟싸빠] "존자 고따마여, '괴로움은 스스로가 만든 것입니까' 라는 질문에 대해
수행자께서는 '깟싸빠여 그렇지 않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렇다면, 존자 고따마여, 괴로움은 남이 만든 것입니까' 라는 질문에 대해
수행자께서는 '깟싸빠여, 그렇지 않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렇다면 존자 고따마여, 괴로움은 스스로 만들기도 하고 남이 만들기도 하는 것입니까' 라는 질문에 대해
수행자께서는 '깟싸빠여, 그렇지 않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렇다면 괴로움은 스스로 만든 것도 아니고 남이 만든 것도 아닌 원인 없이 생겨난 것입니까' 라는 질문에 대해
수행자께서는 '깟싸빠여, 그렇지 않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렇다면 존자 고따마여, 괴로움은 없는 것입니까' 라는 질문에 대해 수
행자께서는 '깟싸빠여, 괴로움은 없는 것이 아니다. 깟싸빠여, 괴로움은 있는 것이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렇다면 세존 고따마께서는 괴로움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까' 라는 질문에 대해
수행자께서는 '깟싸빠여, 나는 괴로움을 알지 못하는 것이 결코 아니고 보지 못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깟싸빠여, 나는 참으로 괴로움을 안다. 깟싸빠여, 나는 참으로 괴로움을 본다' 고 대답했습니다.

존경하는 세존께서는 저에게 괴로움을 보여주십시오. 존
경하는 세존께서는 저에게 괴로움을 가르쳐주십시오."
 
 
[세존] "깟싸빠여, '행위하는 자와 경험하는 자가 동일하다' 고 처음부터 주장하여
'괴로움은 스스로 만든 것이다' 라고 이와 같이 말한다면
그것은 영원주의에 빠지는 것이다.

 영원주의( 常見, 常住論)
 
 
깟싸빠여, '행위하는 자와 경험하는 자가 다르다' 고 주장하여
괴로움을 받게 됨으로 '괴로움은 다른 사람이 만든 것' 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허무주의에 빠지는 것이다.

 
 허무주의(斷見, 斷滅論)
 
 
깟싸빠여, 여래는 이러한 양극단을 떠나서 중도(연기)로서 가르침을 설한다.

 
무명을 조건으로 형성이 생겨나고,
형성을 조건으로 의식이 생겨나며,
의식을 조건으로 명색이 생겨나고,
명색을 조건으로 여섯 감역이 생겨나며,
여섯 감역을 조건으로 접촉이 생겨나고,
접촉을 조건으로 감수가 생겨나며,
감수를 조건으로 갈애가 생겨나고,
갈애를 조건으로 취착이 생겨나며,
취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생겨나고,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생겨나며,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고 죽음, 우울, 슬픔, 고통, 불쾌, 절망이 생겨난다.
이와 같이 해서 모든 괴로움의 다발들이 생겨난다.

그러나 무명이 남김없이 사라져 소멸하면 형성이 소멸하고,
형성이 소멸하면 의식이 소멸하며,
의식이 소멸하면 명색이 소멸하고,
명색이 소멸하면 여섯 감역이 소멸하며,
여섯 감역이 소멸하면 접촉이 소멸하고,
접촉이 소멸하면 감수가 소멸하며,
감수가 소멸하면 갈애가 소멸하고,
갈애가 소멸하면 취착이 소멸하며,
취착이 소멸하면 존재가 소멸하고,
존재가 소멸하면 태어남이 소멸하며,
태어남이 소멸하면 늙고 죽음, 우울, 슬픔, 고통, 불쾌, 절망이 소멸한다.
이와 같이 해서 모든 괴로움의 다발들이 소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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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굿따라니까야, 빛나는 마음의 경(A1.49)


수행승들이여, 이 마음은 빛나는 것이다.

그 마음이 다가오는 번뇌로 오염된다.

배우지 못한 일반 사람은 그것을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알지 못한다.

그래서 배우지 못한 일반 사람에게는 마음의 수행이 없다고 나는 말한다.

 

수행승들이여, 이 마음은 빛나는 것이다.

그 마음이 다가오는 번뇌에서 벗어난다.

잘 배운 고귀한 제자는 그것을 있는 그대로 안다.

그래서 잘 배운 고귀한 제자에게 마음의 수행이 있다고 말한다.



中論
8 觀作作者品(12) 행위와 행위자에 대한 관찰

8-1) 決定有作者不作決定業決定無作者不作無定業

결정적으로 존재하는 행위자라면 결정적인 행위를 짓지 못한다.


(업을 짓는다면 이미 빛나는 마음(진여)이 아니다,

그러므로 업을 짓는 행위자는 번뇌에 오염된 마음을 조건으로 생겨나는 것,실체가 없는 것)


결정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행위자도 결정적이지 않은 행위를 짓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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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엄경

性有空 緣生故如幻참 성품에는 유위가 공하건만 
진성유위공  연생고여환인연으로 생기니 허깨비와 같고 (결정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행위자)
無起滅 不實如空花무위는 기멸(起滅)이 없으니 
무위무기멸  불실여공화실답지 못함이 공화(空華)와 같느니라.(결정적으로 존재하는 행위자)
言妄顯諸同二妄망(妄)을 말하여 진(眞)을 나타낸다면
언망현제진  망진동이망망과 진 둘 모두가 망이요   
猶非云何見所見진(眞)도 진 아님(非眞)도 아니거늘 
유비진비진  운하견소견어찌 견(見)과 소견(所見)이리요
中間無實性 是故若交蘆중간이란 진실한 성품이 없나니 
붕간무실성  시고약교로그렇기에 교차하는 갈대와 같고
結解同所因 聖凡無二路결(結)과 해(解)가 소인(所因)이 같아서
결해동소인  성범무이로성(聖)과 범(凡)이 두 길이 없느니라.
汝觀交中性 空有二俱非네가 교차하는 중간의 성품을 보라(연기)
여관교중성  공유이구비공(空)과 유(有) 둘 다 아니니
迷晦即無明 發明便解脫미혹하면 곧 무명이요 
미회즉무명  발명변해탈발명(發明)하면 곧 해탈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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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決定業無作是業無作者定作者無作作者亦無業

결정적으로 존재하는 행위에는 작용도 없고 행위자도 없다.

결정적으로 존재하는 행위자에게는 작용도 없고 행위도 없다.


8-3) 若定有作者亦定有作業作者及作業卽墮於無因

만일 행위자도 결정적으로 존재하고 행위도 결정적으로 존재한다면

행위자와 행위는 無因論 떨어진다.

 

8-4) 若墮於無因則無因無果無作無作者無所用作法

만일 無因論 떨어진다면 원인도 없고 결과도 없으며

작용도 없고 행위자도 없고 행위도 없게 된다.


8-5) 若無作等法則無有罪福罪福等無故罪福報亦無

만일 작용등의 법이 없다면 죄나 복(등의 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죄나 복(등의 법)이 없기에 죄나 복의 과보도 없다.



8-6) 若無罪福報亦無有涅槃諸可有所作皆空無有果

만일 죄와 복의 과보가 없다면 열반도 역시 없다.

또 있을 수 있는 모든 작용도 모두 하여 그 결과가 없다.


8-7) 作者定不定不能作二業有無相違故一處則無二

결정적으로 존재하면서 존재하지 않는 행위자는 두가지 행위를 할 수 없다.

서로 위배되므로 한 곳에 ( )두가지는 없다.


8-8) 有不能作無無不能作有若有作作者其過如先說

지을 수 없고 무가 유를 지을 수 없다.

만일 행위와 행위자가 있다면 그 과실은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다.


8-9) 作者不作定亦不作不定及定不定業其過如先說

행위자는 결정적이거나 결정적이지 않거나

결정적이면서 결정적이지 않은 행위를 짓지 못한다. 그 과실은 앞에서 얘기한 바와 같다.


8-10) 作者定不定亦定亦不定不能作於業其過如先說

행위자가 실재하건 실재하지 않건 실재하면서 실재하지 않건 행위를 행할 수 없다.

그 과오는 앞에서 말한 것과 같다.


8-11) 因業有作者因作者有業成業義如是更無有餘事

행위로 인하여 행위자가 존재하고 행위자로 인하여 행위가 존재한다.

행위가 이룩되는 이치는 이와 같아서 다시 어떤 다른 일은 없다.


8-12) 如破作作者受受者亦爾及一切諸法亦應如是破

행위와 행위자를 논파하듯이 取者 마찬가지다.

또 일체의 존재도 역시 응당 이와 같이 논파해야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