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윳따 니까야 전재성 역
22:4(1-4) 할릿디까니의 경
8. 그러면 장자여, 어떻게 마을에서의 사귐에 매인 자가 됩니까?
장자여, 세상에 사람이 속인과 교류하고 즐거움을 나누고 괴로움을 나누며,
즐거울 때에 즐거워하고 괴로울 때에 괴로워하고 해야 할 일에 연루됩니다.
장자여, 이와 같이 마을에서의 사귐에 매인 자가 됩니다.
9. 그러면 장자여, 어떻게 마을에서의 사귐을 여읜 자가 됩니까?
장자여, 세상에 어떤 사람이 속인과 교류하지 않고 즐거움을 나누지 않고 괴로움을 나누지 않으며
즐거울 때에도 즐거워하지 않고 괴로울 때에도 괴로워하지 않고 해야 할 일에 연루되지 않습니다.
장자여, 이와 같이 마을에서의 사귐을 여읜 자가 됩니다.
14. 장자여, 어떻게 다툼에 매인 자가 됩니까?
장자여, 세상에 어떤 사람이 이와 같이 ‘그대는 가르침과 계율에 관해 알지 못하지만
나는 가르침과 계율에 관해 안다. 그대는 가르침과 계율에 관해 아는가?
그대는 잘못 실천하고 나는 올바로 실천한다.
그대는 앞에서 설해야 할 것을 뒤에 설하고 뒤에서 설해야 할 것을 앞에서 설한다.
나는 일관되지만 그대는 일관되지 않다. 그대가 실천하는 것은 완전히 전도된 것이다.
그대의 이론은 성취되었더라도 그 이론에서 벗어나기 위해 유행해야 한다.
그대는 싸움에서 진 것이다. 어디 해명해 보라’라고 논쟁합니다.
장자여, 이와 같이 그는 다툼에 매인 자가 됩니다.
15. 장자여, 어떻게 다툼을 여읜 자가 됩니까?
장자여, 세상에 어떤 사람이 이와 같이 ‘그대는 가르침과 계율에 관해 알지 못하지만
나는 가르침과 계율에 대해 안다. 그대는 가르침과 계율에 관해 아는가?
그대는 잘못 실천하고 나는 올바로 실천한다.
그대는 앞에서 설해야 할 것을 뒤에 설하고 뒤에서 설해야 할 것을 앞에서 설한다.
나는 일관되지만 그대는 일관되지 않다. 그대가 실천하는 것은 완전히 전도된 것이다.
그대의 이론은 성취되었더라도 그 이론에서 벗어나기 위해 유행해야 한다.
그대는 싸움에서 진 것이다. 어디 해명해 보라’라고 논쟁하지 않습니다.
장자여, 이와 같이 그는 다툼을 여읜 자가 됩니다.
16. 장자여, 세존께서는 여덟 게송의 품의 마간디야의 질문에 대한 경에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세존]
‘재가의 삶을 버리고
주처를 여읜 유행을 하며
성자의 삶을 사는 님은
마을에서의 사귐을 여의고,
감각적 쾌락의 욕망을 비우고
선호를 뛰어넘어,
사람들과는 다툼을
여의어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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