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없음
디가니까야 13 떼윗자 경
“고따마 존자님, 참된 길과 그릇된 길에 대해서입니다.
다양한 브라흐민들은 각기 다양한 길을 가르칩니다.
그들은 앗다리야, 띳띠리야, 찬도까, 찬다와, 브라흐마짜리야 브라흐민입니다.
이들 모두의 가르침이 그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을 브라흐마 신과 하나됨으로 이끕니까?
마치 마을이나 도시의 근처에 많고 다양한 길이 있지만 그 길들은 모두 함께 마을에서 만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들 브리흐민들이 주장하는 다양한 길이 있지만
그 다양한 길을 따르는 사람을 모두 브라흐마 신과 하나됨으로 이끕니까?”
“와셋타, 그대는 그들 모두가 브라흐마 신과 하나됨으로 이끈다고 말하는가?”
“그렇게 말합니다. 고따마 존자님.”
부처님은 재차 물었다.
“그대는 그들 모두가 브라흐마 신과 하나됨으로 이끈다고 말하는가?”
“그렇게 말합니다. 고따마 존자님.”
“그러나 와셋타, 세 가지 베다에 정통한 브라만들 중 어느 한사람이라도
브라흐마 신을 직접 눈으로 본 적이 있는가?”
“없습니다. 고따마 존자님.”
“또는 세 가지 베다에 정통한 브라만들의 스승의 스승 중에서 어느 한 사람이라고
브라흐마 신을 직접 본 적이 있는가?”
“없습니다. 고따마 존자님.”
“또는 그 스승들 중 7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어느 한 사람이라도
브라흐마 신을 직접 본 적이 있는가?”
“없습니다. 고따마 존자님.”
“그런데 와셋타, 세 가지 베다에 능통한 고대 브라만 선인들은 베다 시구의 저자이고 베다 시구를 읊은 사람들이고 베다 시구를 쓴 사람들이다. 그런데 오늘날의 브라만들은 그것들을 수집하여 반복해서 암송하고 또 반복한다. 어조나 남송은 정확하게 예전의 어조로 말하고 암송한다. 그들은 앗타까, 와마까, 와마데와들이다.
그런데 이들이
‘우리는 브라흐마 신이 언제 나타나고 어떻게 나타나고 어디에 나타나는지를 알고 본다.’고 말한 적이 있는가?”
“없습니다. 고따마 존자님.”
“와셋타, 세 가지 베다에 정통한 브라만 중에 어느 누구도, 또한 그들의 스승들 중 어느 누구도, 또한 그 스승의 스승들 중 어느 누구도, 또한 그 스승들 중 7대를 거슬러 올라가 어느 누구도 브라흐마 신을 직접 본 사람이 없다. 베다 시구의 저자이며 암송자들인 고대 브라만 선인들이 쓰고 암송한 것을 오늘날 브라만 선인들이 쓰고 암송한 것을 오늘날 브라만들은 전승된 그대로 정확하게 그대로의 어조로 암송한다.
전승을 그대로 암송하는 이들조차도
‘브라흐마 신이 언제 나타나고 어떻게 나타나고 어디에 나타나는 지를 알고 본다.’고 말한 적이 없다.
그러므로 세 가지 베다에 정통한 브라만들은 이렇게 말하는 것과 같다.
‘우리들은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한 브라흐마 신과의 하나되는 길을 가르친다.
그러면서 이것만이 해탈에 이르는 곧은 길이며, 바른 길이며,
이 길을 따르는 사람은 브라흐마 신과 하나됨으로 이끈다’고 말하는 셈이다.
그러므로 세 가지 베다에 능통한 브라만들이 말하는 것이 터무니없음이 드러나지 않았는가?”
“정말 터무니없음이 드러났습니다. 고따마 존자님.”
“와셋타, 그것은 마치 장님 세 사람이 끈을 서로 붙잡고 길을 가지만 맨 앞의 사람도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중간 사람도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맨 끝의 사람도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것고 같다. 이와 같이 세 가지 베다에 능통한 브라만들이 말하는 것이 우스꽝스러울 뿐이며 단지 비고 공허한 말임이 드러났다.
그것은 마치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하는 것과 같다.
‘나는 이 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찾아서 사랑하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에게 묻기를,
‘그녀가 무슨 계습에 속하는지 압니까?’
‘모릅니다.’
‘그러면 그대가 찾는 이 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의 이름과 가문을 압니까?
키가 큰지 작은지, 얼굴이 검은지 흰지, 도시에 사는지 시골에 사는지 어떤 마을에 사는지를 압니까?’
‘모릅니다.’
‘그러면 그대는 알지도 못하고 본 적도 없는 여인을 찾고 사랑한다고 합니까?“
‘그렇습니다.’
와셋타, 이 사람의 말이 어리석음이 드러나지 않았는가?”
“그렇습니다. 부처님, 정말 그의 말은 어리석음이 드러났습니다.”
“그것은 마치 아찌라와띠 강을 건너 저쪽 강둑으로 가고자 하는
사람이 그냥 이쪽 강둑에 서서 소리지르기를, ‘저쪽 강둑아 이쪽으로 오너라!’하고 부르는 것과 같다.
와셋타, 이 사람이 부른다고 해서, 빌고, 간원하고, 구슬린다고 해서
저쪽 강둑이 이쪽으로 오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님.”
“그러므로 와셋타, 세가지 베다에 정통한 브라흐민들의 그 말들은
터무니없음이 드러나지 않았는가?”
“정말 그렇습니다. 고따마 존자님,
세 가지 베다에 정통한 브라흐민들의 이야기는 터무니없음이 드러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