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모니의 깨달음
그때 나는 생각했소.
"과거, 현재, 미래의
어떤 고행자가 겪었고,
겪을 고통도 내 고행을
능가하지는 못하리라.
그러나 이런 극한의 고행으로도
인간의 노력으로 성취할 최상의 법과
수승한 지견과 지혜를 이루지 못했다.
깨달음을 위한 다른 길이 있지 않을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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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Majjhima Nikaya.36
그때 나는 이런 비유를 생각했다.
물에 흠뻑 젖은 나무토막이 있다.
어떤 사람이 여기에 문질러 불을 일으키리라
생각하고 다른 나무토막 하나를 가지고 왔다.
그러나 이 사람이 불을 일으킬 수 있겠는가?
아니다.
왜 그런가?
따라서 그 사람이 거둘 수 있는 것은
오직 피로와 실망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수행자가
감각적인 쾌락을 버리지 못하고,
욕망과 집착, 열정, 갈애와
감각적인 쾌락을 향한
열병을 진정시키지 않는 한 그는 헛된 노고로
쥐어 틀리고 뚫는 듯한 고통을 느낄 뿐,
어떤 지식도 통찰력도 최상의 깨달음도
성취할 수 없는 것이다.
깨달음의 전제조건=감각적 쾌락을 버림(捨)=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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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맛지마니까야 M:119 몸에 대한 사띠의 경
4.[세존]“수행승들이여, 그
그렇다면, 어떻게 몸에 대한 사띠를 닦고 익히면, 커다란 과보, 커다란 공덕이 있는가?
수행승들이여, 세상에서 수행승이 숲으로 가고 나무 밑으로 가고 한가한 곳으로 가서
앉아 가부좌를 틀고 몸을 바로 세우고
사띠를 확립하여 숨을 들이쉬고 사띠를 확립하여 숨을 내쉰다.
길게 숨을 들이 쉴 때는 나는 길게 숨을 들이 쉰다고 분명히 알고,
길게 숨을 내 쉴 때는 나는 길게 숨을 내쉰다고 분명히 안다.
짧게 숨을 들이 쉴 때는 나는 짧게 숨을 들이 쉰다고 분명히 알고,
짧게 숨을 내 쉴 때는 나는 짧게 숨을 내쉰다고 분명히 안다.
온 몸을 경험하면서 나는 숨을 들이쉰다고 전념하고,
온 몸을 경험하면서 나는 숨을 내쉰다고 전념한다.
몸의 형성을 고요하게 하면서 나는 숨을 들이쉰다고 전념하고,
몸의 형성을 고요하게 하면서 나는 숨을 내쉰다고 전념한다.
그는 이와 같이 방일하지 않고, 열중하며, 단호하게 수행한다.
그래서 재가 생활에 뿌리를 둔 기억과 의도를 버린다.
그것을 버림으로써, 마음을 내적으로 안정되게 하고,
고요하게 하고, 하나가 되게 하고,
집중(사마타)시킨다.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수행승은 몸에 대한 사띠를 닦는다.
아나빠나사띠(호흡새김)로 그것(감각적 쾌락)을 버림으로 =戒
마음을 내적으로 안정 (4선), 집중(사마타)시킨다=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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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Majjhima Nikaya.36
나는 이렇게
완벽하게 집중된 마음을=(사마타)
번뇌 소멸의 지혜로 향하게 했다 =(위파사나)
그리하여
"이것이 고의 근원이다"
"이것이 고의 소멸이다"
"이것이 고의 소멸로 이끄는 길이다"
라고 아는 지혜,
즉 세계를 있는 바 그대로(yathabhuta)보는 지혜를 성취하였다.
이 지혜를 성취함으로써 내 마음은
모든 감각적 욕망과 생멸, 무명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났다.
"윤회는 끝났다.
청정한 수행은 완성되었다.
해야 될 일을 마쳤으며
더 이상의 생은 없다"는 것을 알았다.
戒(사띠)와
定(사마타), 惠(위파사나) 쌍수로
세계를있는 바 그대로(yathabhuta)보는 지혜(사성제)를 성취
Dhammapada.153~154
수많은 생
헤맸어라 찾지 못하고
집 짓는자 찾아
괴로운 생 다시
또다시
오! 집 짓는 자
너 이제 보였나니
다시는 집 짓지 못하리라
서까래는 모두 꺽어지고
마룻대 또한 부러져
갈애를 부수고 마음은 열반에 이르렀다
석가모니 오도송 (깨달음의 노래)